오렌지 다섯 조각

오렌지 다섯 조각
조안 해리스 지음, 송은경 옮김 / 문학동네
나의 점수 : ★★★★





 

산책을 나가지 않은 대신 2주 이상 끌어온 책을 다 읽어버렸다. 때로, 매일 무엇을 해야 한다는 건 고행이다. 핑계로 연명하는 일상이라서 덜 지루하다. 서재 창 밖으로 산책로를 내려다 보았다. 오늘도 성실한 산책객들. 갑자기 무단 결석한 학생처럼 낯선 시간이었다. 중학교때 병원에 입원했던 며칠을 빼고는 단 한번도 학교에 가지 않은 적이 없다. 나는 공강 시간마저 방황하며 놀았다. 놀 수 있을 때 놀지 않는 나의 조급함은 이제 버릴 때도 됐다. 글을 쓰지 않으면 책을 읽겠다, 는 다짐이 얼마나 오래갈지는 모르겠지만 지킬 수 있을 때는 지킬 것이라는 낙낙한 다짐을 해본다. 실은, 그 다짐이 지금까지 나를 괴롭혔고, 나를 존재하게 했다. 음식과 관련된 소설을 읽으면 부러움부터 앞선다. 취재 현장에 나가 있는 리포터를 부르는 심정이다. 소란스럽고 호들갑스러운 리포터가 김이 모락모락 나는 음식을 먹고 과찬을 쏘아대면 아찔하다. 어떤 맛도 느껴지지 않는데 리포터의 표정은 판타지하다. 그걸 좀 공유하고 싶은데 잘 안된다. 그림의 떡, 이라는 말은 내게 진정 그림의 떡이다. 어느날, 그 요리를 꼭 먹어봐야 겠다는 말이 나올 땐 리포터를 은근 질시하고 있었다는 걸 인정하게 된다. 책에 나온 요리법을 상상하면 시도해봐야 할 것 같다. 어엿한 오븐도 생겼는데 말이다. 헬렌 니어링의 <소박한 밥상> 을 보다 보다 결국 '핸드블렌더'를 갖게 된 것처럼 오븐만 생겨봐라, 하며 씩씩대던 날들이 있었다. 핸드 블렌더 하면 헬렌 니어링이 떠오르고, 육감적인 요리 하면 라우라 에스키벨의 <달콤 쌉싸름한 초콜릿> 이 떠오른다. 조경란의 <혀> 는 젊고 쿨하고 감각적이었다. 우디 알렌의 <카사블랑카여 다시 한번> 에서는 세리주가 나온다. 연극에 출연했던 여배우들은 세리주 (스페인 백포도주) 가 무엇인지 잘 몰랐다. 조앤 해리스의 <오렌지 다섯 조각> 에는 소박한 프랑스 요리들이 나온다. 엄마의 두통, 언니 레네트의 립스틱과 부활절 여왕, 오빠 카시스의 결정적인 용기, 소설의 나레이터이자 끈질긴 삶의 승부사 부아즈, 그리고 뒤통수 제대로인 폴. 결정적인 그 사건의 장면이 결말에 이르러서야 나오는데 2주에 걸쳐 독서하게 만든 이유이기도 하다. 고만고만하고 비슷한 에피소드들이 많다. 사건은 사건답게 결정적 이야기이기 하였지만, 잔뜩 기대하고 있던 기대감에는 못미쳤다. 에피소드를 좀 줄였더라면 소설의 감동이 더 컸을 것이다. 어쨌든 간절히 하고 싶은 이야기, 가 들어있으니 조앤 해리스는 신나게 글을 썼을 것이다. 간절한 무엇. 간절하게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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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은조 | 2008/04/30 21:57 | 꼬리를 밟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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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at 2008/05/01 0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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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이은조 at 2008/05/01 11:08
기대치가 너무 높았을 뿐, 소설은 좋습니다. 꼭 읽어보셔요. 아마도 좋아하실듯 ^^ 누군가도 제게 말을 걸어줄까요. 님의 말이 제겐 페퍼민트차 처럼 개운한걸요. 이렇게 제게 힘을 팍팍 실어주세요. 충전 됐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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