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1일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기욤 뮈소 지음, 전미연 옮김 / 밝은세상
나의 점수 : ★★★★
시간을 되돌리거나 거슬려야 한다면, 나는 어느때로 돌아가고 싶을까. 불가능한 꿈이어서 구체적으로 생각한 적은 없지만 퍼뜩 떠오르는 건, 대학 시절이다. 나는 좀 더 진득했어야 했다. 또래보다 학교에 늦게 입학한 터라 도서관과 시청각실을 드나들며 나름 공부에 매진했었다. 책을 여러번 봤어야 했다는 거다. 단 한 번만 보고 다 읽었다고 하지 말고 한 번 더 읽었어야 했다. 나의 좁고 얕은 바닥이 금세 드러나지않게 무장했어야 했다. 하루에도 보고 있는 것이 많으니 기억의 저장 탱크는 협소해진다. 엄마한테 물건을 찾아달라고 할 때, 엄마는 너무나 쉽게 물건을 찾아주었다. 놀라운 광경이라고 할 밖에. 엄마는 어떻게 그 많은 물건의 거처를 알고 있는 것일까. 내가 주부가 되었을때 어렴풋 답을 알아냈다. 정리한 내 손 덕분이었다. (엄마의 손놀림은 놀라웠으나 나의 손놀림에는 감동이 없었다. 왜지?) 내가 그 물건을 만지고 치웠으므로 나는 다 기억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 남편이 뭔가를 찾을 때, 가전제품이나 집에 부착된 기기 작동에 서툴때 화가 나곤 한다. 엄연히 이 집은 당신과 나의 집이고, 공동 관리해야 할 의무가 있건만 남편은 매번 내 참을성을 시험한다. 그나마 새 집에 입주하고 부터는 좀 달라졌다. 집에 대한 애정이 남편을 바꾸어놓았다. 내 손으로 매만져 익히는 기기처럼 사랑도 그렇게 무르익었다. 지금은 세상에 없는 여인을 만나고 싶어하는 소아외과의사 엘리엇. 엘리엇 가슴에 사랑이라는 이름으로만 기억되어 있는 여인, 일리나. 엘리엇의 절친한 친구 매트. 할리우드 영화처럼 장면 전환이 빠르고 서사도 풍부하고 세밀하다. 소설의 공간 역시 매력적이고 묘사가 생생하다. 도입에서 구투스러워 보이는 번역 때문에 조금 불편했던 것 말고는 소설은 흥미롭다. 그래서 의심하게 된다. 작가의 문체가 그닥 매력적이지는 않았다. 이건 당신의 자연산 얼굴이군요, 라는 느낌보다는 성형한 얼굴을 갖고 있는 그런 문체. 기욤 뮈소의 소설이 처음이라 판단할 수 없는 부분이다. 번역 때문인지 아닌지는 한 권 더 본 다음에 결정해야 할지도. 프랑스어를 배우려면 몇 년은 걸릴터이니 진정한 기욤 뮈소의 문체는 맛 볼 수 없을 것 같다. 번역한
소설에서 문체를 느낄 수 있는 건 쉽지 않은 일이지만 어려운 일도 아니다. 까뮈와 롤랑 바르트의 글은 금세 표가 나니 말이다. 프랑스 작가 기욤 뮈소는 소설 배경을 미국으로 택했다. 지난 달 신새벽에 보았던 장만옥, 여명 주연의 <소살리토>. 샌프란시스코의 예술가 마을인 소살리토에서 사는 것이 장만옥의 꿈이다. 소살리토, 에피소드에선 당연하다는 듯이 영화에서 본 장면 그대로를 상상한다. 영화 소살리토, 와 소살리토가 소설적 배경으로 몇 번 등장한 이 소설의 결말은 닮았다. 그래서 그들은 그렇게 되었다는 것. 해피엔딩이냐 언해피엔딩이냐, 는 밝히지 않는 게 좋겠다. 소설이 헐리우드 스타일과 흡사하다는 한 줄에 이미 대답이 들어있으니까. 마이클 제이폭스의 <백 투 더 퓨처> 는 극장에서도 보았고 케이블 티비에서도 여러번 보았다. 그 영화는 맥컬리 컬킨의 <홈 얼론> 처럼 언제봐도 재미있다. 게다가 누구나 한 번 상상해보는, 타임머신의 세계. 과거의 어떤 운명적인 일들에 개입해서 후회의 반대편으로 바꿔놓으면 미래도 달라진다. 내가 지나온 어제들이 현재진행형의 날로 살아있는 세계. 정말 그런 세계가 있다면, 끔찍하다. 그런 세계가 있다고 해도 나는 돌아가고 싶지 않다. 나는 과거의 나보다 미래의 나, 가 더 궁금하다. 오늘을 어떻게 살았느냐에 따라 미래가 달라진다는 걸 경험으로 알고 있으니 과거는 가봤자 소용이 없다. 2008년 5월 1일의 나는 2008년 5월 1일에 갇혀 같은 일들을 반복한다면, 그보다 더한 형벌도 없을 것 같다. 결말을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정말 그리 되니 뭉클했다. 만약 그 반대의 결말로 갔더라면 허무했을 것 같다. 균형, 조화와 같은 단어가 주는 뉘앙스는 사랑이 이루어졌다, 는 문장처럼 성취감이 느껴진다. 당신이, 내가 바라본 거기에 있을때처럼.
# by | 2008/05/01 19:34 | 꼬리를 밟다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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