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5일
뱀이다
* 오전 9시 11분 - 10시 20분 *
before
아마도 자정 정각에 잠들었던 것 같다. 잠에서 깨었을 땐 새벽 4시 11분. 조금 더 눈을 붙였는데 20분이 흘러있었고, 다시 또 눈을 감았다 떠보니 5시가 넘어 동이 터오고 있었다. 좀 더 자다가 (잔 것인지 공상을 한 것인지 희미한 잠자리의 기억) 8시 넘어 일어났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던 아이였다. 그래야 뭔가를 할 수 있었다. 내게도 이런 질긴 습성이 있구나 싶어 좀 놀랍다. 땀을 흠뻑 흘린 후에 샤워는 놓칠 수 없는 상쾌함이다. 밖으로 나가자. 샤워를 하기 위해 산책을 나가는 거구나, 오늘은...
walking
한낮에 햇살이 초여름을 능가해서 아침엔 산책객들이 많다. 원추리꽃이 노랗게 피었다. 어제는 한 송이만 보았는데 주위를 휘 둘러보니 조금만 더 지나면 원추리꽃밭이 될 것처럼 그득했다. 들에서 자라는 아이치고는 참 곱고 야무지게 생겼다. 얼핏 보기엔 백합이 떠오르는데 찾아보니 백합과란다. 유채는 여전히 싱싱하다. 솟대가 있는 부근을 지날 즈음이었다. 아버지 바지를 입고 설치는 아이 걸음처럼 뭉기적 거리는 형체를 보았다. 센 바람이 불고 있던 터라 바람에 날리는 비닐 봉다리처럼 어떤 줄 혹은 끈이 산책로를 누비는 거라 생각했다. 뱀이었다! 아니, 뱀이라니! 뱀, 뱀, 뱀이닷! 풀숲에서 튀어나와 산책로를 지나 건너 풀숲으로 옮겨간 뱀은 풀 색과 비슷해서 잘 알아볼 수 없었다. 한걸음만 빨랐어도, 한걸음만 느렸어도 나는 뱀을 못 보았을 것이다. 내가 지나고 난 뒤 뱀이 나타났더라면 얼마나 오싹했을까. 아빠가 아파서 몸져 누워있을 때 아빠는 뱀탕을 장복하셨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뱀탕집엘 가면 뱀눈을 가진 아저씨가 작은 경대 열쇠를 따고 독사를 꺼내 보여주었다. 고가의 상품이라고 했다. 한옥의 부뚜막처럼 시멘트로 바른 마루 밑에도 뱀들이 가득했다. 살모사, 은화사가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뱀 이름이다.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뱀 이름을 퍼트리는 것도 소소한 자랑거리였다. 친척 오빠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 산에서 뱀을 잡아 먹었노라는 이야기도 진지하게 듣곤했다. 이렇게 엄한 곳에서 뱀을 보는 건 처음이다. 혹시라도 뱀이 뒤에서 나를 공격할까봐 보폭을 넓혀 빨리 걸었다. 산책로에서는 내 등 뒤가 공포다. 어쩌면 내가 지나온 길들이 시나브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건지도 모른다.
뱀때문에 긴장했던지 옆구리가 결려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운동은 억지로 강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컨디션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기때문에 무리하지 않는다.
대신, 운동기구를 좀 더 괴롭혔다.
젊은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남자가 벤치에 앉아있었다. 천천히 움직여 운동기구로 다가서는데 아뿔싸,. 풍을 맞았는지 손가락이 굽어있고 걸음은 서툴다. 산책로에서는 풍을 맞아 불편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자주 맞닥뜨린다. 휠체어에 의지해 한걸음 옮기던 할아버지는 내가 산책로를 한바퀴 돌고 올 무렵 아주 많은 거리로 이동해 있었다. 박수를 보내고 싶을 만큼. 그런데 이 남자는 매우 젊어보인다. 아니, 젊다. 가족들의 슬픔과 놀라움이 상상되어 찔끔 눈물이 난다. 빠른 쾌유를 바란다.
after
잠깐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벌써 해가 뉘엿뉘엿이다.
before
아마도 자정 정각에 잠들었던 것 같다. 잠에서 깨었을 땐 새벽 4시 11분. 조금 더 눈을 붙였는데 20분이 흘러있었고, 다시 또 눈을 감았다 떠보니 5시가 넘어 동이 터오고 있었다. 좀 더 자다가 (잔 것인지 공상을 한 것인지 희미한 잠자리의 기억) 8시 넘어 일어났다. 나는 어린 시절부터 학교에 가지 않는 날에도 아침 일찍 일어나 세수하고 머리 빗던 아이였다. 그래야 뭔가를 할 수 있었다. 내게도 이런 질긴 습성이 있구나 싶어 좀 놀랍다. 땀을 흠뻑 흘린 후에 샤워는 놓칠 수 없는 상쾌함이다. 밖으로 나가자. 샤워를 하기 위해 산책을 나가는 거구나, 오늘은...
walking
한낮에 햇살이 초여름을 능가해서 아침엔 산책객들이 많다. 원추리꽃이 노랗게 피었다. 어제는 한 송이만 보았는데 주위를 휘 둘러보니 조금만 더 지나면 원추리꽃밭이 될 것처럼 그득했다. 들에서 자라는 아이치고는 참 곱고 야무지게 생겼다. 얼핏 보기엔 백합이 떠오르는데 찾아보니 백합과란다. 유채는 여전히 싱싱하다. 솟대가 있는 부근을 지날 즈음이었다. 아버지 바지를 입고 설치는 아이 걸음처럼 뭉기적 거리는 형체를 보았다. 센 바람이 불고 있던 터라 바람에 날리는 비닐 봉다리처럼 어떤 줄 혹은 끈이 산책로를 누비는 거라 생각했다. 뱀이었다! 아니, 뱀이라니! 뱀, 뱀, 뱀이닷! 풀숲에서 튀어나와 산책로를 지나 건너 풀숲으로 옮겨간 뱀은 풀 색과 비슷해서 잘 알아볼 수 없었다. 한걸음만 빨랐어도, 한걸음만 느렸어도 나는 뱀을 못 보았을 것이다. 내가 지나고 난 뒤 뱀이 나타났더라면 얼마나 오싹했을까. 아빠가 아파서 몸져 누워있을 때 아빠는 뱀탕을 장복하셨다. 엄마 아빠 손을 잡고 뱀탕집엘 가면 뱀눈을 가진 아저씨가 작은 경대 열쇠를 따고 독사를 꺼내 보여주었다. 고가의 상품이라고 했다. 한옥의 부뚜막처럼 시멘트로 바른 마루 밑에도 뱀들이 가득했다. 살모사, 은화사가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뱀 이름이다. 학교에 가서 아이들에게 뱀 이름을 퍼트리는 것도 소소한 자랑거리였다. 친척 오빠가 군대에서 휴가를 나오면 산에서 뱀을 잡아 먹었노라는 이야기도 진지하게 듣곤했다. 이렇게 엄한 곳에서 뱀을 보는 건 처음이다. 혹시라도 뱀이 뒤에서 나를 공격할까봐 보폭을 넓혀 빨리 걸었다. 산책로에서는 내 등 뒤가 공포다. 어쩌면 내가 지나온 길들이 시나브로 사라졌다가 나타나는 건지도 모른다.
뱀때문에 긴장했던지 옆구리가 결려 달리기를 하지 않았다.
운동은 억지로 강행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컨디션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는 걸 알기때문에 무리하지 않는다.
대신, 운동기구를 좀 더 괴롭혔다.
젊은이라고 해도 손색없을 남자가 벤치에 앉아있었다. 천천히 움직여 운동기구로 다가서는데 아뿔싸,. 풍을 맞았는지 손가락이 굽어있고 걸음은 서툴다. 산책로에서는 풍을 맞아 불편한 걸음을 옮기는 사람들을 자주 맞닥뜨린다. 휠체어에 의지해 한걸음 옮기던 할아버지는 내가 산책로를 한바퀴 돌고 올 무렵 아주 많은 거리로 이동해 있었다. 박수를 보내고 싶을 만큼. 그런데 이 남자는 매우 젊어보인다. 아니, 젊다. 가족들의 슬픔과 놀라움이 상상되어 찔끔 눈물이 난다. 빠른 쾌유를 바란다.
after
잠깐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벌써 해가 뉘엿뉘엿이다.
# by | 2008/05/05 16:24 | 공중산책 | 트랙백 | 덧글(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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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와보세요. 보기만해도 매일 걷고 싶어진다니까요.
사진 찾아보고 산책로 풍경 올려볼게요.
사진 정리를 잘 한다고 생각했는데 가끔 기억이 안나요...ㅎ